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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손해배상(기)]〈진도군 민간인 희생 국가배상청구 사건〉 - 박진완 변호사의 LawBrain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배상(기)]〈진도군 민간인 희생 국가배상청구 사건〉[공2013하,1077]

【판시사항】

[1]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 신청대상자가 조사대상 사건의 희생자라는 결정을 함에 따라 유족들이 그 결정에 기초하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경우, 위 위원회 조사보고서가 갖는 증명력 및 내용의 모순 등으로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을 수긍하기 곤란한 경우 법원이 취할 조치

[2]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무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경우,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소극)

[3] 채무자가 소멸시효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판단하는 기준 및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상당한 기간’의 범위

[4] 불법행위로 입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 산정에서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 및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의 진실규명결정을 거친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산정할 때 고려하여야 할 사항

【판결요지】

[1] [다수의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정리위원회’라 한다)의 조사보고서에서 대상 사건 및 시대상황의 전체적인 흐름과 사건의 개괄적 내용을 정리한 부분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할 것이지만, 국가를 상대로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서는 그러한 전체 구도 속에서 개별 당사자가 해당 사건의 희생자가 맞는지에 대하여 조사보고서 중 해당 부분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등 증거에 의하여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그 절차에서까지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나 처분 내용이 법률상 ‘사실의 추정’과 같은 효력을 가지거나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조사보고서 자체로 개별 신청대상자 부분에 관하여 판단한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스스로 전제한 결정 기준에 어긋난다고 보이거나, 조사보고서에 희생자 확인이나 추정 결정의 인정 근거로 나온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 내용이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과 불일치하거나, 그것이 추측이나 소문을 진술한 것인지 또는 누구로부터 전해 들은 것인지 아니면 직접 목격한 것인지조차 식별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등으로 그 진술의 구체성이나 관련성 또는 증명력이 현저히 부족하여 논리와 경험칙상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을 수긍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조사관이 조사한 내용을 요약한 조사보고서의 내용만으로 사실의 존부를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 경우에는 참고인 등의 진술 내용을 담은 정리위원회의 원시자료 등에 대한 증거조사 등을 통하여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사법적 절차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실심리의 자세이다. 물론 그러한 심리의 과정에서 정리위원회의 조사자료 등을 보관하고 있는 국가 측에서 개별 사건의 참고인 등이 한 진술 내용의 모순점이나 부족한 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에 관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여 다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고, 그러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때에는 민사소송의 심리구조상 국가에 불리한 평가를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바로 상대방의 주장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

[대법관 이인복, 대법관 이상훈,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의 반대의견] 피해자가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국가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진실규명결정은 그 내용에 중대하고 명백한 오류가 있는 등으로 인하여 그 자체로 증명력이 부족함이 분명한 경우가 아닌 한 매우 유력한 증거로서의 가치를 가진다고 할 것이어서 피해자는 그것으로써 국가 소속 공무원에 의한 불법행위책임 발생 원인사실의 존재를 증명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 경우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을 부인하며 가해행위를 한 바가 없다고 다투는 국가가 그에 관한 반증을 제출할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 즉 국가는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에 관한 구체적인 사유를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반증을 제출함으로써 진실규명결정의 신빙성을 충분히 흔들어야만 비로소 피해자 측에 진실규명결정의 내용과 같은 사실의 존재를 추가로 증명할 필요가 생기고, 국가가 그 정도의 증명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함부로 진실규명결정의 증명력을 부정하고 그와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

[2]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무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3]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에도 채권자는 그러한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다. 다만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4] 불법행위로 입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이를 확정할 수 있고, 법원이 그 위자료 액수 결정의 근거가 되는 제반 사정을 판결 이유 중에 빠짐없이 명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나, 이것이 위자료의 산정에 법관의 자의가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위자료의 산정에도 그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될 수 있는 액수가 산정되어야 한다는 한계가 당연히 존재하고, 따라서 그 한계를 넘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은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 된다. 또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을 거친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은 그 피해가 발생한 때로부터 무려 약 60년이 경과되었고, 과거사정리법도 그 피해의 일률적인 회복을 지향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숫자도 매우 많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등 특수한 사정이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위자료의 액수를 정할 때는 피해자들 상호 간의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희생자 유족의 숫자 등에 따른 적절한 조정도 필요하다.

【참조조문】

[1] 민사소송법 제202조, 제288조, 민법 제750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조, 제2조, 제3조, 제19조, 제23조, 제26조, 제34조, 제36조 [2] 민법 제2조, 제162조 [3] 민법 제2조, 제766조 제1항 [4] 민법 제393조, 제751조, 제763조

【참조판례】

[1]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7다25971 판결(공2010하, 1212)
[2]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공2011하, 2046)
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11다36091 판결(공2011하, 2344)
[4] 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다43165 판결(공2003상, 211)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8다3527 판결(공2010상, 202)

【전 문】

【원고, 피상고인】원고 1 외 6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서석 담당변호사 박도영)

【피고, 상고인】대한민국

【원심판결】광주고법 2012. 10. 10. 선고 2012나2735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관하여

가.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어떠한 의문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 자연과학적 증명은 아니지만, 사실의 확정에 필요한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하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고(민사소송법 제202조 참조), 법률상 추정과 같이 법률에 명문의 근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증명책임은 해당 요건사실을 주장하는 당사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재판의 원리와 증명책임의 원칙은 증명의 대상이 된 사실의 존재를 확인하는 내용의 행정처분이 있었던 경우에도 근본적인 구도가 달라진다고 할 수 없다.

민사소송은 대립하는 쌍방 당사자가 소송에서 제출한 주장과 증거에 대한 반박과 탄핵의 과정을 거치는 대심적 구조 위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민사소송에서 증명의 대상이 된 사실의 확인을 내용으로 하는 행정처분이 있었던 경우에도 그 처분에 담긴 사실의 존재를 기초로 하여 국가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제기된 때에는 그 행정처분의 적법성과 내용의 신빙성은 그 소송절차 안에서 다시 확인되어야 한다. 특히 그 행정처분이 민사소송의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진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 객관적 자료의 뒷받침이 없고 반대 측의 의견진술 여지도 배제된 채 이루어진 것이고, 더욱이 처분 그 자체의 내용으로 보더라도 사실판단의 근거나 판단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사정까지 있다면, 법원으로서는 그 처분만을 유일한 근거로 해서 쉽게 사실을 확정할 것이 아니라 처분의 내용과 근거자료의 신빙성 유무에 대하여 필요한 검토와 증거조사를 거쳐 사실인정을 하여야 한다. 다만 그 행정처분의 근거가 된 법률에서 특정한 역사적 사실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기구를 만들어 사실조사를 하도록 한 경우에는 그 법률의 목적과 입법 취지, 조사기구의 구성과 조사방식, 처분의 경과, 그 처분에서 제시된 근거의 내용과 처분결과와의 관련성 및 신빙성의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행정처분으로 확인된 사실이 진실한지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이때 국가기관에 의한 조사 및 처분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여 입증의 부담을 완화·경감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처분에서 어떠한 사실이 확인 또는 추정된다고 판단하였다고 해서 그에 대해 법률상 추정과 같은 정도의 증거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사실확인적 처분문서 역시 보고문서의 성질을 가지는 것일 뿐이다(대법원 1980. 9. 9. 선고 79다128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은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제1조). 그에 따라 진실규명의 대상은, 일제강점기 또는 그 직전의 항일독립운동으로부터 일제강점기 이후 법 시행일인 2005. 12. 1.까지의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해방 이후 공권력 행사에 의한 모든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제2조). 과거사정리법과 기록에 의하면, 위와 같은 목적으로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정리위원회’라 한다)는 위 조사대상 사건 유족 등의 신청을 받은 다음 조사관들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신청된 대상자가 조사대상 사건의 희생자인지를 심의하여 위원 과반수의 결정으로 희생자 확인결정, 희생자 추정결정 또는 진실규명 불능결정을 하였다. 정리위원회는 위 조사대상 사건 중 특히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이하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이라 한다)에 관한 진실규명결정을 함에 있어, 희생자 확인결정은 시신을 수습한 경우, 시신을 수습하지는 못했지만 시신을 확인한 경우에 하고, 희생자 추정결정은 경찰에 체포·연행되었거나 지서·경찰서에 구금 중 생사불명되거나 수장된 경우, 수복 때 육지로 피난 나가서 일가족이 함께 토벌대에게 희생된 사람 중 비전투원으로 판단된 경우에 하는 등으로 내부적 처리 기준을 세워 결정의 종류를 달리하였는데, 실제 조사결과의 처리에 있어서는 조사관들의 개인적 판단 기준의 편차에 따라 그 기준이 모든 경우에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 조사관들은 조사대상 사건의 유형별로 전체적인 시대 흐름과 사건의 경위를 정리한 다음 개별 신청대상자 등이 당해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이 가능한지를 조사한 다음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조사는 대개 희생자의 유족인 신청인 및 친척 등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이루어졌고, 제적등본이나 재소자명부 등 사건 당시의 상황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도 상당 부분 수집·검토되었으나, 조사보고서에는 참고인들의 진술 중 조사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부 진술 부분만이 발췌되어 있거나 대단히 축약적으로 요약되어 있어 조사관의 주관적인 해석이나 평가, 선별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적어도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의 경우에는 가해자 측으로 지목된 군이나 경찰 등으로부터 개별 신청대상자의 피해 경위 등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의견을 제시받은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리위원회는 조사관들이 작성한 조사보고서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최종 결정을 하였고, 정리위원회 위원들의 심의과정에서 근거 자료나 신청인 또는 참고인의 진술을 듣는 등으로 그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바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진실규명결정은 진실규명 신청인, 조사대상자, 참고인에게만 통지되고 이들만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제28조).

한편 과거사정리법은 정리위원회의 조사 및 결정에 따른 정부의 의무로서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가해자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제34조), 구체적인 “피해 및 명예회복” 조치로서 “정부는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6조 제1항). 이러한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여 정리위원회도 2009. 8. 21.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한 상황이다. 배·보상 원칙과 방식은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 등 관련자의 피해 정도를 기준으로 보상하되, 현재 생활 여건을 감안하여 보상 수준과 형태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배상은 적정한 액수의 특별 정액금 위자료 방식으로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는 내용으로 국회와 대통령에게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건의한 바 있다.

위와 같은 과거사정리법의 목적과 내용, 정리위원회의 활동 방식, 조사보고서의 내용 등을 종합해 보면,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 및 이를 통하여 개별 신청대상자가 각 조사대상 사건의 희생자라고 한 결정은 정리위원회 나름의 조사방식에 따른 자료조사 등을 거쳐 사실발견을 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조사과정에서는 물론 최종 결정처분을 할 당시까지도 그것을 토대로 하여 국가 등 가해자를 상대로 일반 민사소송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까지 염두에 두고 사실관계를 확정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묻혀 있던 역사적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정부가 이를 토대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배상이나 보상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사정리법 자체에 규정된 정부의 의무와 정리위원회의 위와 같은 건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당초 기대한 특별법의 제정 등 후속절차를 취하지 아니하자 유족 등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될 것임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특히 피고 스스로 한국전쟁 전후의 불법행위에 관한 진상규명 시도를 은폐하거나 심지어 처벌하기까지 하는 등으로 막았던 경우도 없지 않고 그 사이에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객관적인 증거가 상당 부분 사라지고 개별 사건에 관하여 알고 있던 사람들도 상당수 사망하였다는 등의 사정을 감안하면 희생자의 시신이나 직접적인 목격자 진술 등 명백한 증거에 의하여 진실규명 신청대상자가 당시 희생된 것이 맞다는 사실을 엄격하게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위원회의 희생자 확인결정 또는 추정결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인정 근거의 연관성이나 신빙성 등에 대한 심사를 할 것도 없이 그 대상자는 모두 군이나 경찰 등 국가에 의한 희생자라는 사실이 다툼의 여지가 없이 확정된 것이고, 그로 인한 국가의 불법행위책임은 반드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결국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서 대상 사건 및 시대상황의 전체적인 흐름과 사건의 개괄적 내용을 정리한 부분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할 것이지만, 국가를 상대로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서는 그러한 전체 구도 속에서 개별 당사자가 해당 사건의 희생자가 맞는지에 대하여 조사보고서 중 해당 부분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등 증거에 의하여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그 절차에서까지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나 처분 내용이 법률상 ‘사실의 추정’과 같은 효력을 가지거나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조사보고서 자체로 개별 신청대상자 부분에 관하여 판단한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스스로 전제한 결정 기준에 어긋난다고 보이거나, 조사보고서에 희생자 확인이나 추정 결정의 인정 근거로 나온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 내용이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과 불일치하거나, 그것이 추측이나 소문을 진술한 것인지 또는 누구로부터 전해 들은 것인지 아니면 직접 목격한 것인지조차 식별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등으로 그 진술의 구체성이나 관련성 또는 증명력이 현저히 부족하여 논리와 경험칙상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을 수긍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조사관이 조사한 내용을 요약한 조사보고서의 내용만으로 사실의 존부를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 경우에는 참고인 등의 진술 내용을 담은 정리위원회의 원시자료 등에 대한 증거조사 등을 통하여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사법적 절차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실심리의 자세이다. 물론 그러한 심리의 과정에서 정리위원회의 조사자료 등을 보관하고 있는 국가 측에서 개별 사건의 참고인 등이 한 진술 내용의 모순점이나 부족한 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에 관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여 다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고, 그러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때에는 민사소송의 심리구조상 피고에게 불리한 평가를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바로 상대방의 주장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7다25971 판결 참조). 자유심증주의는 형식적, 법률적 증거규칙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할 뿐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을 인용한다는 것이 아니므로, 법원은 적법한 증거조사절차를 거친 증거능력 있는 증거에 의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며, 사실인정이 사실심의 전권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제약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대법원 1982. 8. 24. 선고 82다카317 판결 등 참조).

다.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원심은 제1심판결을 일부 인용하여,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설립된 정리위원회가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을 신뢰하여 원고들의 피상속인인 망 소외 1, 2(이하 ‘망인들’이라 한다)를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에는 ‘진도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나 이는 오기로 보인다)의 피해자로 확인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면 법원도 이를 존중함이 마땅하고, 이에 대하여 일반적인 사법절차의 사실인정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정도의 증명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하여, 실질적으로 정리위원회가 작성한 조사보고서(갑 제1호증)만을 증거로 망인들이 피고 소속 경찰들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사실인정을 한 후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였다(위 증거를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은 모두 망인들과 원고들의 신분관계에 관한 증거들이다).

라.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

(1) 먼저, 망 소외 1에 관하여 본다.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정리위원회는 참고인 소외 3과 소외 4에 대한 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진술조서)를 근거로 망인이 행방불명되어 희생자로 추정된다는 취지의 진실규명결정을 하였고, 원심은 진실규명결정의 이유에 해당하는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망인이 1950. 11. 10. 피고 소속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런데 우선 소외 3은 망 소외 1의 4촌 동생으로서 정리위원회에 위 망인에 대한 진실규명신청을 한 신청인 본인이고, 그 진술 내용이라고 조사관이 요약해 둔 내용도 위 망인이 인민군 점령하에서 강요에 못 이겨 인민재판을 참관하였고 그 이유로 수복이 된 후 모략을 당하여 살해되었다는 취지이기는 하나 그 진술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익명 처리가 되어 있어 신원조차 특정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진술 내용만으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국적 규모로 조직적·집단적인 사살이 자행된 국민보도연맹원이나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등의 경우처럼 집단적 불법의 과정에서 망인이 피고 소속 경찰 등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모략으로 피해를 당하였다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나머지 한 명의 참고인인 소외 4의 진술은 ‘한마을에 살아서 알게 되었고, 수복 이후 경찰에 끌려간 후 행방불명되었다’라는 것이 전부여서 이것만으로는 구체적인 피해 경위 등을 특정하기 어렵다. 또한 망 소외 1의 자녀인 원고 1, 2, 5 등 직접적인 유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인과 4촌 간인 소외 3이 진실규명신청을 한 경위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록이 없다. 한편 망 소외 1의 제적등본에는 사망일자가 1952. 3. 2.로 기재되어 있어 위 조사보고서에서 살해되었다고 추정한 시기와는 차이가 있고 당시 시신이 수습된 바도 없어, 정리위원회에서도 망 소외 1에 대해서는 희생자 ‘추정’ 결정을 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조사보고서의 내용만으로 망 소외 1이 진실규명결정에 기재된 것처럼 1950. 11. 10. 경찰에 의하여 불법적으로 사살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단정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2) 다음 망 소외 2에 관하여 본다.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정리위원회는 참고인 진술, 망인의 시신수습, 망인의 제적부 기재를 판단 근거로 삼아 망인을 희생자로 ‘확인’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하였고, 원심은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망인이 1950. 10. 24. 피고 소속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런데 그 인정 근거 중 유일한 제3자의 진술은 소외 5의 진술뿐인데, 조사보고서상 그 진술을 요약한 표에는 “수복 이후 경찰에게 연행되어 사살됨”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 진술을 직접 인용하여 요약한 부분은 부친(소외 6)과 모친(소외 7) 및 오빠(소외 8)가 경찰 등에 끌려가 사살되었고, 남동생(소외 9)도 학련생들이 업어갔는데 어디서 죽었는지 모른다는 것으로, 원고 6, 7의 피상속인인 망 소외 2가 살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 자체가 없다. 그리고 원고 7에 대한 조사 내용 부분은 망인의 사망 당시 3세여서 나중에 가족들로부터 사건을 전해들은 것이라는 취지로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어서 망인의 사망 경위에 관하여 누구로부터 무슨 내용을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시신수습에 관하여도 위 조사보고서에는 망인의 ‘시신수습’란에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있을 뿐이어서 그에 관하여 어떤 절차로 어떤 조사가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망 소외 2의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위 조사보고서의 내용 자체로 보더라도 원고들 주장과 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결정을 한 이상 법원도 이를 존중함이 마땅하다고 전제한 다음, 조사관이 작성한 참고인들의 진술조서 원본을 제출하도록 하여 확인하거나 관련 증인을 조사하는 등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증거조사를 전혀 거치지 아니한 채, 위 조사보고서만을 증거로 하여 망인들에 대한 원고들 주장의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하였으니, 거기에는 증거재판의 원리와 증명책임의 원칙 및 자유심증주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있다.

2. 상고이유 제2점에 관하여

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지만(민법 제766조 제1항), 정리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때에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봄이 상당하므로(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2다4091 판결 참조), 그때부터 3년이 경과하여야 위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된다 할 것이다. 다른 한편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고(1921. 4. 7. 조선총독부법률 제42호로 제정되고, 1951. 9. 24. 법률 제217호로 제정된 구 재정법 제82조에 의하여 폐지되기 전의 구 회계법 제32조), 이는 위 3년의 단기소멸시효 기간과 달리 불법행위일로부터 바로 진행이 되므로 과거사정리법에 의하여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에 대하여 희생자임을 확인하는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경우에도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희생자에게 피해가 생긴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한 때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하였고, 채무자가 그로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등 참조).

기록에 의하면, 피고는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 등에 대하여 위와 같이 5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된 때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2005. 5. 31. 법률 제7542호로 과거사정리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라 산하에 정리위원회를 구성한 후 피해자들의 신청을 받거나 직권으로 진실규명 활동을 해 왔고, 과거사정리법을 통하여 피고 스스로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고,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며,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처럼 과거사정리법은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을 포함하여 그 적용대상 사건 전체에 대하여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왜곡되거나 오해가 있는 부분을 바로잡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도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피해자를 특정하여 피해 경위 등을 밝히고 그에 대한 피해회복까지를 목적으로 하여 제정된 법률임을 명시하여 밝히고 있다. 과거사와 관련하여 종전에 국회가 제정한 법률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추구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경우와 개별 피해자에 대한 배상·보상이나 위로금을 지급해 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까지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전자에 속하는 것이라면「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나「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등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과거사정리법은 그 법률 자체에서 보상금 등 지급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법문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후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법률에서 과거의 특정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개별 피해자에 대하여 금전지급의 방법에 의한 피해회복을 선언한 경우에는 정부나 국회가 후속 입법 등을 통하여 그 지급대상이나 기준을 정하는 등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그 경우 금전지급에 의한 피해회복은 오로지 입법 조치 등을 통하여 일괄 해결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개별 피해자가 사법절차를 통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배제된다고 하려면 법률에서 그러한 취지의 규정을 두어 밝힌 경우에 한한다 할 것이다. 결국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을 통하여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실행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이상,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피해자 등이 국가배상청구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법을 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수용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파생된 법적 의미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취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앞서 본 것처럼 종전에도 다수의 과거사 관련 개별 법률들이 제정되었으나 그 적용대상이 특정사건에 국한되어 있는 등의 한계가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여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의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국민통합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과거사정리법이 제정되었고, 그에 따라 진실규명 대상 사건도 일제강점기 이전 항일독립운동에서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시기 및 해방 이후 권위주의적 통치시까지의 모든 반민족적,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공권력의 행사 등이 전부 포함되도록 하였고(과거사정리법 제1조제2조 참조), 법의 명칭을 과거사정리 ‘기본법’으로 한 것도 그러한 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과거사정리법의 적용대상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근거한 진실규명신청조차 없었던 경우에는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더라도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할 것이다.

그런데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이 사건에서 망인들에 대하여는 과거사정리법에 의한 진실규명신청이 있었고, 피고 산하 정리위원회도 망인들을 희생자로 확인 또는 추정하는 진실규명결정을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위 망인들의 유족인 원고들로서는 그 결정에 기초하여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원고들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할 것이어서 이는 허용될 수 없다.

나. 한편 위와 같이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에도 채권자는 그러한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 할 것인데,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다.

다만 위와 같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그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된 후 2009. 4. 6.(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에는 ‘2009. 8. 25.’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나 이는 오기로 보인다) 망인들에 대한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졌지만, 다른 한편 정리위원회는 2009. 8. 21. 국회와 대통령에게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건의한 후 2010. 6. 30. 활동을 종료한 다음 과거사정리법 제32조에 따라 2010. 12.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한 종합보고서를 통해서도 같은 내용의 건의의견을 제시하였다. 국회에서도 2011. 11. 17.「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1813885호)이 발의되었으나, 그 후 당해 국회의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도 있다. 즉 이 사건에는 과거사정리법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원고들이 과거사정리법의 규정과 정리위원회의 건의 등에 따라 피고가 그 명예회복과 피해 보상 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자 비로소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소가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토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비교적 단순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로부터 2년 10개월이 경과한 2012. 2. 14.에 제기되기는 하였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진실규명결정 이후 단기소멸시효의 기간 경과 직전까지 피고의 입법적 조치를 기다린 것이 상당하다고 볼 만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할 것이고, 이를 감안하면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다. 원심은, ① 전시 중에 경찰이나 군인이 저지른 위법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원고들로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를 확정하기 곤란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의 어떤 조치가 있기 전까지 피고 등을 상대로 적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점, ② 전쟁이나 내란 등 국가비상시기에 경찰이나 군인 등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집단적으로 자행된,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③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피고가 오히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국민의 생명을 박탈한 후 이에 대하여 진상 파악 및 피해 보상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뒤늦게 원고들이 위 집단학살의 전모를 어림잡아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그 불법의 중대성에 비추어 현저히 불공평하여 허용될 수 없는 점을 들어, 원고들로서는 망인들의 사망에 대한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때까지는 객관적으로 피고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고, 피해를 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매우 큰 반면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사정을 들어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변함없이 적용되어 왔던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기초적인 구분 기준을 일반조항인 신의칙을 통하여 아예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또한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역시 국가가 아닌 일반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에서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때만 가능하다 할 것이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대법원 2011. 7. 28. 선고 2009다92784 판결 참조).

기록을 살펴보아도 원심판결에서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망인들이 전쟁기간 중에 경찰 등에 의하여 자행된 기본권 침해행위에 의하여 희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만으로 원고들이 한국전쟁 종료 후 50년 이상이 지난 다음 과거사정리법이 제정되고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을 때까지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또한 원심은 이 사건이 종래 대법원에서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사유 중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경우’(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에 해당한다고 본 듯하다. 그러나 위 사유는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큰 상태에서 채무자가 동일하게 시효가 완성된 다른 채권자에게는 임의로 변제를 하면서 당해 채권자에 대해서만 소멸시효 완성을 들어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 시효 완성을 인정하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등의 경우를 의미한다 할 것인데, 원심이 든 사유만으로는 이 사건에 그러한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원심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사유로서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 있기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거나, 이 사건에서 피고의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보아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본 것은 잘못이라고 할 것이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피고는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원고들로 하여금 이를 신뢰하게 한 점이 인정되므로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여 배척한 결론에 있어서는 정당하다. 따라서 소멸시효에 관한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없다.

3. 상고이유 제3점에 대하여

불법행위로 입은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는 사실심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이를 확정할 수 있는 것이고, 법원이 그 위자료 액수 결정의 근거가 되는 제반 사정을 판결 이유 중에 빠짐없이 명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나(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다43165 판결 등 참조), 이것이 위자료의 산정에 법관의 자의가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위자료의 산정에도 그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될 수 있는 액수가 산정되어야 한다는 한계가 당연히 존재한다 할 것이고, 따라서 그 한계를 넘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은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 된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8다3527 판결 참조).

또한 과거사정리법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을 거친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은 그 피해가 발생한 때로부터 무려 약 60년이 경과되었고, 과거사정리법도 그 피해의 일률적인 회복을 지향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숫자도 매우 많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등 특수한 사정이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위자료의 액수를 정함에 있어서는 피해자들 상호 간의 형평도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이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희생자 유족의 숫자 등에 따른 적절한 조정도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원심판결 선고 전에 있었던 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2다4091 판결, 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2다17004 판결 등에서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희생 사건의 위자료를 비슷한 기준으로 정한 원심판결들이 이미 여러 건 확정된 바가 있다. 그럼에도 원심이 그와 유사한 사안인 이 사건에서 위자료 액수를 달리할 만한 다른 사정에 관하여 밝히지도 않은 채, 희생자 본인과 그 배우자 및 부모와 자녀 등에 대하여 각각 상당한 정도로 증액된 기준을 적용하여 위자료를 인정한 것은 위에서 본 사건의 특수성 등에 비추어 반드시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그로써 사실심법원의 재량의 한계를 일탈했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 할 것이므로, 결국 원심판결을 파기할 사유가 될 만한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와 다른 견해를 전제로 한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없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한 대법관 이인복, 대법관 이상훈,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신의 보충의견이 있다.

5.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한 대법관 이인복, 대법관 이상훈,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의 반대의견

다수의견은 상고이유 제1점과 관련하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된다고 보면서도, 개별 당사자가 희생자가 맞는지를 증거에 의하여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고 정리위원회가 희생자 확인 또는 추정 결정을 한 근거가 그와 같이 사실확정을 하기에 논리와 경험칙상 수긍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의 내용만으로 사실의 존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정리위원회의 원시자료에 대한 증거조사 등을 통하여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다음, 이 사건에서 원심이 실질적으로 조사보고서만을 증거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발생 원인사실을 인정하였으나, 조사보고서의 기재 내용 자체로 보더라도 희생자 확인 또는 추정 결정의 내용대로 희생자들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 있는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심이 추가적인 증거조사 없이 원고들 주장과 같은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가. (1) 과거사정리법은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제1조). 과거사정리법은 위와 같이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낼 사건으로 ‘1945. 8. 15.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1945. 8. 15.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등을 규정하고 있다(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

과거사정리법이 이러한 사건들을 진실규명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가 규정한 기간 동안 발생한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인권유린이나 폭력·학살 등 사건은 침해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진상을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알기 어려워 진상이 왜곡되거나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많고, 피해자 개개인은 관련 자료에 대한 접근가능성이 극히 제한되어 있어 스스로 관련 자료를 조사하거나 수집하여 진상을 밝히는 것이 매우 어려운 반면, 국가는 관련 자료를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과거사정리법이 부여한 조사방법과 절차를 통하여 관련 자료를 비교적 용이하게 조사·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사정리법은 위와 같은 진실규명 업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정리위원회를 설치하고, 판사·검사·군법무관 또는 변호사의 직에 10년 이상 재직한 자, 대학에서 전임교수 이상의 직에 10년 이상 재직한 자, 3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공무원의 직에 10년 이상 재직한 자, 성직자 또는 역사고증·사료편찬 등의 연구활동에 10년 이상 종사한 자로 정리위원회를 구성하되, 그 구성에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이 관여하도록 하고 있다(제4조). 또한 위원의 임기 및 직무상 독립과 신분을 보장하면서(제5조, 제8조), 정당의 당원 등이 위원이 되거나 위원이 정치활동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할 뿐만 아니라 제척·기피·회피 제도를 두고 있으며(제9조 내지 제11조), 정리위원회의 의사는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제13조). 아울러 그 업무수행을 위하여 사무처 및 신분이 보장되는 직원을 두고, 필요한 사항을 자문하기 위하여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4조 내지 제16조).

과거사정리법은 진실규명 조사와 관련하여, 위원이나 소속 직원을 활용한 다양한 조사방법(참고인 등의 진술청취, 관계기관에 대한 자료 제출요구, 사실조회, 감정의뢰, 실지조사 등)을 규정하면서 정리위원회로부터 자료 등의 제출명령을 받은 기관 등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으며, 제출을 거부할 사유가 있더라도 비공개를 전제로 정리위원회가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제23조). 또한 참고인 등에 대한 진술청취 조사방법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동행명령 제도를 두고 있고, 대상자가 수감자나 현역 군인인 경우 교도소나 소속 부대장의 협력의무 등도 규정하고 있다(제24조, 제47조). 그 밖에 국가기관을 비롯한 관계기관에 대하여 정리위원회의 업무에 적극 협조하고 진실규명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제33조).

이와 같은 조사를 거쳐 진실규명이 된 경우 정리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 의결로써 진실규명결정을 하게 된다(제12조, 제26조). 이러한 진실규명결정은 조사대상자나 참고인에게 통지하여야 하고, 이의가 있는 자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며(제28조),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도 있다(대법원 2013. 1. 16. 선고 2010두22856 판결 등 참조).

그리고 과거사정리법은 국가에 대하여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와 가해자를 상대로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제34조), 정부에 대하여 진실규명결정에서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제36조 제1항). 또한 과거사정리법은 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사건 피해자 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가가 하여야 할 조치, 진실규명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하여 권고한 사항을 소관 국가기관이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제32조 제2항, 제4항, 제5항), 이에 따라「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처리에 관한 규정」(2008. 1. 8. 대통령령 제20532호)이 제정되어 권고사항 이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2) 위와 같이 과거사정리법이 왜곡되거나 은폐된 사건의 진실규명 등을 목적으로 독립된 정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실규명을 위하여 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 전문성과 중립성을 기하고 위원의 업무상 독립과 신분을 보장하는 한편 각종 조사방법과 관련 절차를 규정하면서 국가기관의 협력의무를 비롯한 조사의 실효성 확보 장치를 마련한 점, 이해관계인에게 결정을 다툴 수 있는 이의신청권이 부여되어 있고 항고소송을 통하여 불복할 기회도 주어지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국가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자가 진상을 확인한 국가 산하기관인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경우, 진실규명결정은 증명력이 매우 높은 유력한 증거로 보아야 하고, 명확한 반증이 없는 한 그 증명력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아울러 과거사정리법이 이와 같이 진실규명결정에서 규명된 진실에 따라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국가나 정부에게 부과하고 있는 것은, 진실규명결정 및 그에 따른 처우가 가지는 법적·사회적 의미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서 국가가 진실규명결정에 스스로 따르고 그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를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아니 된다.

나. (1)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민사소송법 제202조). 따라서 사실의 인정과 그 전제로 행하여지는 증거의 취사선택 및 증거가치에 대한 판단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반되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실심법원의 전권에 속한다. 이에 따라 소송 외에서 전문적인 학식, 경험이 있는 자가 작성한 의견을 기재한 서면이라 하더라도 그 서면이 서증으로 제출되었을 때 법원이 이를 합리적이라고 인정하면 이를 사실인정의 자료로 할 수 있다(대법원 2006. 5. 25. 선고 2005다77848 판결, 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8다73731 판결 등 참조).

그러므로 사실심법원이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증명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 내용에 따라 국가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책임 발생의 원인이 되는 사실을 인정하였다면, 그러한 사실의 인정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반되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2)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정리위원회 구성의 전문성과 중립성,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실규명을 위하여 마련된 여러 가지 법적 절차와 그 실효성 확보 장치 등에 비추어 그 증명력이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하고 명확한 반증이 없는 한 그 증명력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앞서 본 바와 같은 과거사정리법의 목적이나 취지, 정리위원회의 역할 및 진실규명결정과 그에 따른 처우가 가지는 법적·사회적 의미 등을 고려해 보면,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근거로 그 결정에서 규명된 국가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책임 발생 원인사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민사소송법 제202조에서 말하는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도 부합한다.

더욱이 과거사정리법은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행위를 대상으로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려는 것으로서, 그 행위에 관한 증거는 이미 산일되거나 왜곡 또는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과거사정리법은 정리위원회에 광범위한 진실규명 조사방법을 부여하고 국가기관 등에게도 적극적인 협조 의무를 지움으로써 가능한 모든 자료가 조사과정에서 현출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였지만, 위와 같은 상황 아래에서 현출될 수 있는 증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한 객관적인 폭력·학살 등의 행위가 드러나더라도 그 대상인 피해자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피해사실을 밝힐 수 있는 증거라고 한다면 피해자의 유족이나 친지 등의 진술이라거나 그 진술이 간접사실에 대한 진술이라고 하여 이를 가벼이 여길 것은 아니다. 폭력·학살 등의 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정되고 그 무렵 피해자가 사망하였거나 행방을 알 수 없음이 확인된다면, 그 폭력·학살 등의 행위와 아울러 그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유족·친지 등의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부정할 것은 아니며,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루어진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이 경험의 법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진실규명결정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국가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진실규명결정은 그 내용에 중대하고 명백한 오류가 있는 등으로 인하여 그 자체로 증명력이 부족함이 분명한 경우가 아닌 한 매우 유력한 증거로서의 가치를 가진다고 할 것이어서 피해자는 그것으로써 국가 소속 공무원에 의한 불법행위책임 발생 원인사실의 존재를 증명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 경우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을 부인하며 가해행위를 한 바가 없다고 다투는 국가가 그에 관한 반증을 제출할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 즉 국가는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에 관한 구체적인 사유를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반증을 제출함으로써 진실규명결정의 신빙성을 충분히 흔들어야만 비로소 피해자 측에 진실규명결정의 내용과 같은 사실의 존재를 추가로 증명할 필요가 생기고, 국가가 그 정도의 증명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함부로 진실규명결정의 증명력을 부정하고 그와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덧붙여 지적하자면,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와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할 법률상 의무를 부담하는 국가가 돌연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을 부인하며 피해자에게 사건의 진상에 관하여 새로이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면, 이는 과거사정리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 채 국가가 산하기관을 통하여 스스로 행한 진실규명결정과 이에 따라 피해회복 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률상 의무를 전면 부정하는 셈이 된다.

(3) 이와 같이 증거의 증명력 판단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한 사실심법원의 전권에 속하는 점 및 진실규명결정은 그 자체로 증명력이 부족함이 분명한 경우가 아닌 한 고도의 증명력을 가지므로 이로써 국가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책임 발생 원인사실의 존재를 증명하였다고 볼 수 있고 국가가 그에 대한 반증을 제출할 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사실심법원이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증명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 결정을 근거로 국가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책임 발생의 원인이 되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위와 같이 진실규명결정의 증명력이 배척되는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다. 원심판결 이유 및 원심이 유지한 제1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하면, 한국전쟁 발발 후 전남 서남부 경찰부대 및 각 지역 경찰은 북한 인민군과 호남지방에서 일진일퇴를 반복하였고, 그 와중에 인민군은 1950. 8. 하순경 진도군을 점령하였는데, 인민군 점령 당시 전남 서남부지역에는 군·면 인민위원회 등이 설치되었고, 좌익 세력에 의한 우익 인사의 희생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특히 인민군과 좌익 세력은 1950. 9. 하순경 강진, 해남, 완도군에서 우익 인사를 대규모로 희생시킨 사실, 유엔군이 1950. 9. 중순경 서울을 수복하면서 전남 서남부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인민군과 좌익 세력은 1950. 9. 하순경 그 지역에서 퇴각하였고, 그 지역을 수복한 경찰은 1950. 10. 초순경부터 인민군 점령기의 부역혐의자를 색출하기 시작하였으며, 부역혐의자로 지서에서 체포되거나 자수한 주민들은 지서 및 경찰서 인근에서 희생되거나 재판을 거쳐 형무소에 수감된 사실, 과거사정리법이 제정된 후 정리위원회는 2006. 11. 30. 소외 3 등으로부터 진도군 일대에서 일어난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신청을 접수하여 2007. 4.경부터 2009. 2.경까지 신청인 조사, 참고인 조사, 현장 조사 등을 실시한 사실, 그 결과 정리위원회는 2009. 4. 6. 유족 진술, 참고인 진술, 시신 수습 여부 및 제적부 기록 등을 근거로 “망 소외 1은 수복 이후 인민재판을 참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어 진도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다가 1950. 11. 10. 경찰관에게 끌려 나간 후 행방불명되었고, 망 소외 2는 수복 이후 부역 혐의로 고군지서 경찰에 연행되어 지서에 구금되어 있다가 1950. 10. 24.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저수지에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적법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망 소외 1은 1950. 11. 중순경 사망하였다고 추정되고, 망 소외 2는 1950. 10. 24. 사망하였음이 확인된다.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있고 희생자의 유족들을 비롯한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사업을 하며, 유족들이 원할 경우 가족관계등록부 등 잘못된 공식기록을 정정하고, 군경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쟁 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국내법과 관련 국제법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인권교육을 할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의 진실규명결정(이하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라고 한다)을 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이를 앞에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의 내용에 중대하고 명백한 오류가 있다거나 그 자체로 증명력이 부족함이 분명하다고 보이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도무지 이 사건 심리과정상 정리위원회의 조사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국가 측에서 참고인 진술 내용 등의 모순점이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그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는 등으로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의 증명력을 탄핵하려는 시도조차 해 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피고 소송수행자는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 간접·전문 증거에 의한 결정이라는 등의 간략한 사유를 내세워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주장을 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이러한 소송진행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가치를 가지는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을 근거로 원고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국가의 손해배상책임 발생 원인사실을 인정한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이 진실규명결정이 갖는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의 근거가 된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그 판시와 같은 불명확한 점 등이 있음을 지적하며 이로써 희생자들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거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 내용과 같은 사실을 인정한 원심이 위법하다고 한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사항들은 단지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 내용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제기에 불과할 뿐이지 그로써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의 내용 자체에 무슨 오류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또 그것은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의 증명력이 분명하게 부족하다고 볼 정도의 사정도 못 된다. 따라서 그와 같은 이유만으로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 근거한 사실심법원의 사실인정을 위법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라. 과거사정리법은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국민으로부터 입법권을 부여받은 국회가 2005. 5. 31. 법률로 제정한 것이다. 과거사정리법의 제정 취지는 국가권력의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행정부나 법원도 마땅히 존중하여야 한다. 입법적 결단으로 제정된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이루어진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은, 그로써 더 이상의 무용한 논란이나 시비를 뒤로 하고 우리나라의 굴곡 많았던 과거사를 문자 그대로 정리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변론주의와 처분권주의가 적용되는 민사소송절차에서 다시 검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피고의 주장에 법원이 동조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타당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은 일반적인 행정위원회가 사인(사인) 간의 분쟁에 대하여 내린 재결(재결)과는 그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음을 밝힌다.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신의 보충의견

가.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때부터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쳐 권위주의 통치 시절에 이르기까지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 공권력의 행사에 의한 각종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등 다양한 ‘과거사’가 존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권위주의적 통치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 즈음하여 5·18 민주화운동 등 개별적인 분야에서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손해를 배·보상하는 내용의 특별법이 제정·시행되기도 하였으나, 개별 특별법에서 소외된 여타 과거사에 대해서도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피해자나 목격자가 사망한 경우가 많고, 설사 생존하여 있더라도 기억의 망실, 왜곡, 불일치, 일관성의 결여 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객관적인 기록이나 자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사건 관련자들이 사실을 부인하거나 증거서류를 은닉하는 경우도 드물지 아니하여 정확한 사실을 확정하여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아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렵사리 사실확정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확정된 사실을 근거로 하여 민사소송의 방법으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법원에 제기하여야 한다면 그 재판절차에서는 필연적으로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제기되고, 특별한 사정과 법리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그 항변을 배척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시 입법자를 비롯한 국민 일반의 법의식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연유로 국회는 과거사를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과거사정리법을 제정하면서도, 피해자나 그의 유족이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근거로 하여 국가를 상대로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으로 피해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인식 아래, 국가에 대하여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제34조), 정부에 대하여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나 그 유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보이고(제36조 제1항), 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작업을 완료한 후 국회와 대통령에게 배·보상 특별법의 제정을 건의하거나, 국회에서「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던 사실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국회나 정부가 정리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하였을 가정적인 경우와 그렇게 하지 아니하여 민사소송절차로 해결을 모색하는 현실적인 경우를 나누어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진실규명결정이 포함된 문서가 조사보고서로서 이를 칭함에 있어 다수의견은 ‘조사보고서’라는 표현을, 반대의견은 ‘진실규명결정’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바, 이하에서는 다수의견의 예에 따라 ‘조사보고서’라고 칭한다)의 증명력을 살펴본다.

(1) 국회나 정부가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하였다면,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으로 피해를 본 당사자와 그의 유족(이하 ‘피해자’라고 한다)에게 특별법에 의한 배·보상을 함에 있어 국가는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고, 진실규명결정과 다른 사실을 주장하거나 그 이외의 별도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가 업무상 독립과 신분을 보장하고 조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까지 갖추어 정리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정리위원회로 하여금 진실규명결정을 하게 하고 그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사정리법에 기한 의무 이행의 방편으로서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마당에, 특별법에 따른 배·보상 단계에서 그 진실규명결정의 효력을 부정한다면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금반언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진실규명결정을 받고도 배·보상을 거부당하였다면 그 거부처분에 불복하여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될 것이고, 이때 법원은 진실규명결정에 당연무효사유 등이 없는 이상 나아가 원시자료의 존부나 내용 등에 대해 따져볼 것도 없이 조사보고서의 존재만으로 당해 거부처분을 취소하여야 할 것이다.

(2) 그러나 과거사정리법 자체에 규정된 국가의 의무와 정리위원회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정부는 특별법의 제정 등 후속 절차를 미루고 있고, 피해자는 배·보상 특별법의 제정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여 이 사건과 같이 개별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절차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바, 이처럼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문제가 민사소송의 영역에 들어온 이상, 조사보고서에 대한 증거의 가치 역시 민사소송법에서 요구하는 증거재판의 원리와 증명책임의 원칙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리위원회는 과거사정리법상 비록 중립성을 모색하기 위한 일부 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위원의 과반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함으로써(제4조 제2항)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점, 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에 관하여 내부적 처리 기준을 세워 희생자 확인과 추정으로 결정의 종류를 구분하여 두었으나, 실제 조사결과의 처리에 있어서는 조사관들의 개인적 편차에 따라 그 기준이 모든 경우에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은 점, 조사관들의 조사는 대개 피해자나 그 친척 등 특수관계에 있는 참고인들의 불완전한 진술을 토대로 이루어졌고, 가해자 측으로 지목된 군이나 경찰 등으로부터 개별 피해자의 피해 경위 등에 대하여 반박하는 의견을 제시받은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정리위원회는 사실관계에 관한 재확인 없이 조사관들의 조사결과를 주된 근거로 최종결정을 내린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조사보고서는 법원이 통상의 민사소송절차에서 행하는 사실인정의 방식과는 달리 과거사정리법의 목적과 취지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므로 그 조사보고서에 대하여 법원이 입증의 부담을 완화·경감시키는 것은 몰라도 이를 넘어서서 지금까지 확립되어 온 민사소송에 있어서의 증거재판의 원리와 증명책임의 원칙을 후퇴시켜 가면서까지 사실상의 추정에 준하는 정도로 고도의 증명력을 부여하는 등의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조사보고서의 판단 근거가 된 원시자료만으로는 희생자로 판정하기에 현저히 부족한 경우까지 조사보고서가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법원이 그에 기속되는 판단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민사소송의 일반원칙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다. 결국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대하여 사실상의 추정에 준하는 정도로 고도의 증명력을 부여하는 등의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의 논리는 특별법이 제정되었을 경우 배·보상의 영역 또는 그에 뒤따를 수 있는 행정소송의 영역에서는 타당하다고 할 것이지만, 이 사건과 같은 민사소송의 영역에서까지 타당성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라. 현재와 같이 국회나 정부가 과거사정리법상의 의무규정과 정리위원회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통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피해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민사소송절차로 내모는 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또한 민사소송을 통한 개별적 해결방식은 진실규명결정 후 상당한 기간 내에 소송을 제기한 사람과 그 기간이 경과한 후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애당초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입증에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차별하고, 나아가 입증에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실심법원의 재량 범위 내에서 위자료 액수에 차등이 생길 수 있어 피해구제의 불균형을 낳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은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에 관한 국가의 피해배상 등 후속 절차는 국민 전체의 여론과 국가재정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국민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입법 정책적 판단에 근거하여 통일적 기준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국회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리위원회가 건의한 바와 같이 배·보상 특별법의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을 종식시키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과거사정리법의 입법 취지가 완성될 수 있도록 서두를 일이다.

이상으로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혀 둔다.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박병대(주심)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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